고분자 합성 및 구조분석에 독자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분자 말단화학이라는 새로운 학문분야를 개척하여 고분자 상전이 연구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
고분자 말단화학을 통한 메타성질로 각광받는 복잡네트워크 구조 구현 방법론 정립
제어 라디칼 중합을 활용해 분자량 분포가 좁은, 주쇄가 다양화된 고분자 합성법을 정립한 연구성과는 노벨 화학상을 받을 수 있는 중요 업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렇게 합성된 고분자는 필연적으로 극성의 말단과 링커 분자를 동반하지만, 이들이 고분자의 열역학적 상전이 거동, 열적 특성, 기계적 물성에 미치는 영향은 경시되어 왔다. 박문정 교수는 1% 분율도 채 되지 않는 이러한 고분자 말단부에 주목하였다. 고분자 말단화학을 통해 통상적인 열역학 변수들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도 미세상 분리거동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정립하였다. 이는 지난 반세기 동안 교과서에서 배워 온 고분자 상전이도를 재정립하고, 고분자 열역학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 수 있는 독보적인 연구 결과다.
고분자 시스템에서 배관공의 악몽(Plumber?s nightmare) 구조 세계 최초로 발견
이 방법론을 기반으로 말단 관능기 사이의 분자인력을 말단화학을 통해 정밀하게 제어하고, 그 결과 고분자 시스템에서 배관공의 악몽(Plumber?s nightmare) 구조를 세계 최초로 발견하였다. 이러한 ‘배관공의 악몽’ 구조는 고분자 사슬 말단이 모두 중앙에 모여 다른 나노 구조체와 차별화된 광학적?기계적 메타물성을 가질 것으로 기대되어왔지만, 실제로는 구현이 어려워 불가능의 영역으로 인식되었다. 말단-말단 분자인력의 체계적 변화를 통해 다이아몬드, 벌집육각네트워크 구조와 같은 복잡 네트워크 구조 안정화 방법론을 개진하면서 해당 연구결과를 2024년 사이언스 지(Science)에 출판하는 등 통념을 뒤엎는 연구를 수행 중이다. 말단화학을 통한 복잡 네트워크 구조를 구현하는 것이 다양한 주쇄구조의 고분자에 범용적으로 적용될 수 있음을 추가적으로 입증함으로써, 학문적·산업적 파급효과가 지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리화학자, 말단화학 개척자, 미국 물리학회 고분자분과 수석부회장, 엄마 교수,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 모두 포항공과대학 화학과 박문정 교수를 가리키는 수식입니다. 박문정 교수는 교과서에 설명되지 않은 현상에 의문을 품고, 세상에 없던 새로운 방법으로 세상의 원리를 찾아가는 탐험가이기도 합니다. 그가 연구하는 물리화학은 실생활과 밀접하지 않지만, 교과서에 나올법한 기초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그가 새롭게 규명한 원리는 실제로도 많은 동료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는데요. 그가 제시한 이론을 바탕으로 개발된 소재들은 앞으로 미래 사회의 근간을 이룰 다양한 에너지 시스템 및 웨어러블 기술 발전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 연구자들에게 존경받는 연구자를 꿈꾸며 오늘을 담금질하는 박문정 교수를 포항에서 만났습니다.
운이 좋게 과분한 상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15년 간 포항공대에 재직하면서, 논문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학생들과 우리만의 연구를 하자는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연구해 왔습니다. 이에 대한 인정을 받은 것 같아 뿌듯합니다.
저는 관능기*를 가지는 고분자를 정밀하게 합성하고, 합성된 고분자의 구조-물성 상관관계를 연구합니다. 고분자 중 특히 전하(이온/전자)를 수송할 수 있는 고분자에 관심이 있습니다. 제 연구실의 모든 연구는 컴퓨터 계산을 통해 이온성 관능기를 가지는 단량체를 설계하고, 합성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잘 재단된 단량체를 기반으로 잘 정의된 분자량을 갖는 고분자로 중합하기 위한 정밀 합성법을 정립하고, 독특한 자기조립(self-assembly)*을 유도하기 위해 분자인력을 제어하는 연구를 합니다. 전하를 가지는 고분자의 자기조립은 통상적인 고분자 대비 훨씬 더 복잡하고 수 옹스트롱에서 수백 나노미터크기까지 계층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지난 반세기 동안 고분자 교과서를 통해 배워온 지식과는 크게 다릅니다. 실험결과에 기반하여 교과서 지식과 다른, 새로운 이론을 제안하고 정립하는 것이 제가 연구를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기쁨입니다. 이러한 고분자 소재는 다양한 에너지 시스템(리튬이차전지, 수소연료전지, 수전해) 및 웨어러블 기술(액추에이터, AR/VR)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고분자는 수백-수천 개의 단위체가 공유결합으로 연결된 거대분자이기 때문에 고분자 합성을 개시, 종료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말단 관능기가 도입됩니다. 하지만 거대분자라는 고분자의 특성상, 단 하나의 구성단위(unit)에 불과한 말단 관능기는 고분자 구조식을 그릴 때 생략이 허용될 정도로 그 영향력이 간과되었습니다. 저희 연구실은 고분자 사슬 말단에 강한 분자인력을 유도할 수 있는 관능기가 도입되는 경우, 기존 정립된 고분자 상전이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습니다. 특히, 1% 분율도 되지 않는 고분자 말단부에 주목해 메타성질로 각광받는 네트워크 구조들(plumber’s nightmare, double diamond 등)을 안정화한 최초의 사례를 보고하였다는 점에서 학문적·산업적 의의가 높습니다.
2012년 조교수 시절 포항 방사광가속기에서 밤늦게 소각산란 실험을 하던 대학원생에게 “원래 판상(lamellar) 구조가 나와야 되는 시료에서 육각실린더 (hexagonal cylinder) 구조가 나왔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시료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학생과 토의하던 중 학생이 고분자의 수용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수산화 말단기를 술폰산 관능기로 개질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통상적으로 판상에서 실린더로 전이시키려면 분자량 분율이 다른 새로운 고분자를 합성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확히 어떤 일이 생긴 건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고분자 나노구조 제어를 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론이 될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그 후 여러 박사과정 학생들과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하며, 고분자 말단화학자에 제 이름을 붙이게 됐습니다. 특히 이번 사이언스 논문이 출판되기까지 3년 여의 시간을 불철주야 연구에 매진한 이호준 학생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나노구속환경'입니다. 저는 고분자사슬 혹은 이온이 수 나노미터 공간에 갇히는 경우 그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해리(relaxation)*하고, 이동하는지가 늘 궁금합니다. 기존에는 수십-수백나노미터 기공에 고분자를 강제로 밀어 넣고 고분자 사슬의 열적 거동이나 움직임을 관측하는 획일적인 방법으로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강제로 하는 건 재미가 없잖아요. 저는 고분자와 이온들이 자발적으로 수-수십 나노미터 크기의 반복주기를 받는 나노구조체를 형성할 때 그 안에서 일어나는 물리화학적 거동이 거시세계에서의 거동과 어떻게 다른지가 궁금합니다. 여전히 밝혀야 할 숙제가 많습니다.
고분자 말단에 결합되는 관능기의 종류 및 이를 연결하는 링커분자 조절을 통해 고분자 시스템에서 열역학적으로 불안정하다고 알려져 온 배관공의 악몽(plumber?s nightmare) 구조를 세계 최초로 발견하고, 복잡 네트워크 구조 안정화 방법론을 개진하였습니다. 고분자 사슬 말단에 강한 분자인력을 유도할 수 있는 관능기가 도입되는 경우, 거대분자인 고분자의 사슬정렬 구조를 크게 변화시켜 마치 나비효과처럼 말단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노구조 계면의 곡률을 뒤틀 수 있었습니다. 이는 지난 반세기 동안 교과서로 배운 고분자 상전이도를 재정립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발견입니다.
이번 연구는 1% 분율도 채 되지 않는 고분자 말단부에 주목하여 구현하기 어려운 네트워크 구조들(plumber’s nightmare, double diamond 등)을 안정화한 최초의 사례를 보고하였다는 점에서, 특히 이 방법론이 다양한 구조의 고분자에 범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추가적으로 입증하였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 그 의의가 높습니다. 새로운 구조의 고분자를 만들려면 다양한 조성과 분자량의 고분자 합성을 수행해야 하지만, 말단화학은 한 종류의 고분자로부터 간단한 말단 치환만을 통해서 다양한 구조를 유도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적으로도 응용성이 높은 연구성과라고 판단합니다.
제어 라디칼 중합을 활용해 분자량 분포가 좁은, 주쇄가 다양화된 고분자 합성법 정립 연구는 노벨 화학상을 받을만한 큰 업적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어 라디칼 중합으로 합성된 고분자는 개시반응, 종료반응을 통하면서 필연적으로 극성의 말단과 링커 분자를 동반하지만, 이들이 고분자의 열역학적 상전이 거동, 열적 특성, 기계적 물성에 미치는 영향은 그동안 경시되었습니다. 저는 포항공대 부임 후 말단 그룹이 고분자 열역학에 미치는 중대함을 체계적으로 입증하고, 고분자 말단화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개척해왔습니다.
100나노미터 미만 크기의 pitch(반복주기 크기, 금번 연구는 10-40 나노미터)를 갖는 3차원 네트워크 구조는 기계적 물성, 광학특성에서 메타성질을 가질 것으로 예측되지만, 실제로 소재를 합성한 사례가 존재하지 않아 실험적으로 검증하지 못했습니다. 금번 연구를 통해 이처럼 새로운 연구에 도전하는 사례들이 나올 것 같습니다.
더불어 말단화학을 통해 통상적인 변수들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도 미세상 분리거동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새로운 방법론이 세계적인 석학들에 의해 후속 연구로 보고되고, 이론학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저희 말단화학을 기반으로 한 고분자 상전이도를 시뮬레이션 하는 연구 분야가 새롭게 생기는 등, 그 학문적 중요성이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 조교수로 부임하면 본인의 첫 아이디어로 연구한 논문을 짧은 시간 안에 좋은 저널에 출판하고 학계에서 인정받고자 연구실에서 밤을 새는 ‘월화수목금금금’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상당히 운이 좋았습니다. 첫해 학생 5명이 모두 퇴근하지 않는 교수와 함께 실험실에서 밤을 지새우며 열심히 연구하였고, 그 결과 제 교신저자 첫 논문이 2010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됐습니다. 지금까지 발표한 110편의 논문 중 이 첫 논문이 제게 가장 큰 힘이 되었고, 지금도 자랑스럽습니다.
하나 더 꼽자면, 2013년 부교수로 승진함과 동시에 출산을 했습니다. 아이를 낳으러 수술실로 들어가기 한 시간 전에 이메일을 확인했는데, 당시 연구분야를 넓혀 처음으로 시도한 액추에이터 연구 관련 논문의 수정요청(revision request)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로부터 와있었습니다. 아이가 나오기 직전까지 학생과 전화로 통화하며 추가실험 관련 이야기를 나누자, 남편이 혀를 내두르더라고요. 출산 후 5일 만에 실험실에 복귀해 해당 논문을 무사히 출판한 일도 젊은 시절 열정적으로 살았던 제 모습의 단편을 보여주는 사례로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제가 궁금하고, 꼭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절대 포기하지 않고 무섭게 집중합니다. 아들이 학교에서 부모님에 대한 글을 써왔어요. 저학년 때는 ‘우리 엄마는 정말 부지런하다. 늘 일하고 밤늦게까지 일한다’라고 썼더라고요. 올해는 5학년이 됐는데, ‘우리 엄마는 포기할 줄을 모른다’라고 썼어요. 아이가 숙제할 때 모르는 게 있으면, 이해할 때까지 예를 바꿔가며 계속 설명했거든요. ‘부지런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게 저의 원동력이죠. 이번 사이언스 논문도 결과는 재미있는데 정확한 메커니즘을 알 수 없어서 7년 동안 논문으로 쓰지 않고 여러 실험을 반복했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7년이나 묵힌 연구가 좋은 평을 받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순수과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득하게 한 우물을 파는 연구가 값진 성과를 이끌 수 있습니다.
저는 고분자 물리화학자입니다. 고분자 물리화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는 가장 큰 학회가 미국물리학회 고분자물리 분과로 회원수가 1500명 정도 됩니다. 회원들의 전자투표를 통해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는데, 사실 저도 왜 선출됐는지 의아했습니다. 임기 첫해는 수석부회장 내년에 차기회장. 내후년엔 회장으로 3년간 활동하고요. 매주 한 번씩 새벽 시간에 화상회의를 하는데 시차 때문에 몸이 힘들어 저를 뽑아준 회원들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습니다.(웃음) 임원이 되고 보니 학회는 사람과 돈이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기존 회원을 잘 유지함은 물론 연구주제를 잘 선정해 학회의 주 토픽으로 다루어 더 많은 사람이 우리 학회에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또 젊은 연구자들의 성장도 중요한 안건입니다. 요즘 해외학회에 가면 처음 보는 외국의 젊은 박사들 혹은 대학원생들이 함께 사진을 찍자는 요청을 많이 합니다. 그럴 때면 좀 어색하면서도 연구자로서 보람을 느끼지요.
물리화학은 실생활과 밀접하지 않지만, 교과서에 나올만한 기초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저는 아무리 좋은 실험 결과가 나와도 그 이유가 이해되지 않으면 절대 논문으로 출판하지 않아요. 결과를 해석하지 못하면 반쪽짜리거든요. 요즘은 연구도 무한경쟁 시대라 실험에서 물성이 잘 나오면 일단 논문을 쓰는 분위기입니다. 저는 그게 안 되는 성격이고요. 그래서 논문을 많이 못 쓴 해는 연말이 다가올수록 중압감이 상당합니다. 하지만 고뇌하고 반성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제가 야구를 좋아하는데, 어느 해 이종범 선수 아들이 인터뷰한 내용을 보며 크게 공감했어요. 내용인 즉, 시즌 초반 3~4개월을 소위 심하게 말아먹었어요. 남은 시즌 아무리 잘해도 나올 수 있는 타율이 정해져 있는 거죠. 그래서 아버지에게 ‘이제 어떡해야 하느냐’고 물었대요. 그러자 이종범 선수가 ‘뭘 어떡해. 올해는 그냥 말아먹은 거야’라고 답했다고 해요. 그 말이 되게 공감됐어요. 만회하려 할수록 역효과가 나요. 분기별로 돌아보고 진행 상황을 점검하되 논문 수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전 천천히 해도 다른 연구자가 제 연구를 낚아챌 수 없다는 신념으로 늦게 가도 틀리지 않는 결과를 발표하려고 합니다. 제 연구는 ‘나밖에 할 수 없다’는 자부심이 있거든요. 이것이 제가 대학원생 시절부터 30년 가까이 조급해하지 않고 자존감을 지키면서 행복하게 연구할 수 있었던 근원입니다. 요즘은 여기에 아이의 사랑이 더해져서 더 행복합니다. 저희 아이는 가끔씩 신문에 나오고, 외국 사람들과 영어로 화상회의 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고, 자기도 엄마처럼 훌륭한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늘 이야기해요. 자녀에게 존경받는다는 느낌이 들 때야 말로 연구자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인 것 같아요.
학생들과 사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다정하지만, 연구 이야기를 할 때는 기준이 매우 높아요. 한마디로 얄짤 없는, 까탈스러운 교수입니다. 본인의 연구분야 문헌 공부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거나, 원리를 모르면서 좋은 장비로 측정해 숫자만 이야기하면 크게 혼을 냅니다. 요즘 연구장비는 사용자를 위한 소프트웨어가 워낙 편리해 마우스를 클릭만 해도 결과 값을 얻을 수 있거든요. 저는 이렇게 값비싼 장비로 얻은 물성을 보고하는 일은 대학 실험실에서 할 훈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사는 해당 분야 연구를 제일 잘하는 ‘장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장비가 어떠한 이론적 배경과 측정방법으로 구동되는지 원리를 모르면서, 실험결과의 우수성을 논하는 것은 Chat GPT가 다 가르쳐주는(잘못된 것을 가르쳐줘도 그게 맞다고 믿게 되는) 길을 과학자가 간다는 것과 같거든요.
더불어 저희 연구실 원칙 중 하나는 선후배 간 사수 부사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지켜온 원칙입니다. 모든 학생이 각자의 연구주제를 수행하고, 아무리 바빠도 제가 학생과 직접 토론하고 연구 방향을 잡아줍니다. 물론 선배들이 실험적인 방법은 도와주고 조언도 해주지만, 후배의 연구주제에 간섭할 수는 없습니다. 사수 부사수 관계는 기업체가 효과적으로 운영되는 방식이지, 연구자의 창의성을 키워주는 방식은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올해로 교수가 된지 15년이 되었고, 은퇴까지 19년이 남았습니다. 지금까지 보내온 시간보다 보낼 시간이 더 많기 때문에, 지금보다는 더 나은 교수?연구자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하지만 연구는 욕심을 부린다고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학생들을 만나고, 그 학생들과 잘 대화하고 이끌어주는 에너지를 잃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전하수송 고분자 분야의 국제적 입지를 잘 다지고, 제가 존경하는 세계적인 석학들처럼 환갑이 훌쩍 넘어서도 각종 국제학회에서 활동하고, 학자로 인정받는 그런 연구자가 되고 싶습니다. 또한 제가 수행하는 기초연구/합성연구 결과들이 전기화학시스템에 적용 가능한 소재로 상용화되는 후속 연결을 은퇴 전에 볼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요즘 제 아들도 같은 질문을 종종합니다. “엄마는 언제부터 과학자가 되고 싶었어? 꿈이 한 번도 안 바뀌었어?”이렇게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장래희망이 과학자였고, 꿈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습니다.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과학자가 늘 멋져 보였어요.
미래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너무 공부에만 파묻히지 말고 하고 싶은 활동을 많이 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 초/중학교 학생들이라면 더 더욱요. 저희 아들은 영어학원 빼고는 공부 관련 사교육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이가 좋아하는 리틀야구단 활동으로 주말을 보내고, 테니스, 탁구, 배드민턴, 승마 등등 하고 싶은 운동과 숲체험 같은 활동을 원 없이 할 수 있게 해줘요. 또래 아이들이 이미 중학교 선행학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학자 엄마는 전혀 마음이 불안하지 않아요. 창의적인 과학자가 되려면 마음의 양분이 충분해야 합니다. 마음의 양분은 어린시절 가족의 사랑, 하고 싶은 것을 즐겨본 행복한 경험이 축적되어 생기는 것이니까요. 단순 공식을 외우고, 지식을 외우는 건 머릿속에서 곧 증발하게 됩니다. 창의적인 연구는 내공이 든든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해본 경험이 충분할 때 비로소 시작할 수 있습니다.